인생의 종교본능

 

첫째는 인간의 종교입니다. 사람이 금수와 다른점이 여러 가지 있지요. 그 가운데 가장 현저한 것은 우리 사람에게는 종교가 있습니다. 금수 사회에는 종교가 없습니다.

문명한 사회에는 교회가 있고, 야만 사회에는 신당이 있습니다. 동양에도 그렇고, 서양에도 그렇고, 아프리카에도 그렇고, 또 현대 남양군도에도 그렇고, 또 현대만 그런 것이 아니고 옛날에도 그렇고, 동서고금을 물론하고 어떤 사회문화 가운데 들어가 보던지 종교가 없는 데는 도무지 없습니다. 하나님을 모른다고 하며, 하나님께서 안 계신 듯이 사는 사람들도 흔히 위급하면 하나님을 찾습니다.

저는 믿지 아니하는 형제와 이야기할 때, 그 사람 말이, 자기는 하나님 앞에 기도는 도무지 않지만 몇 해전에 38선을 몰래 넘어 올 때에는 하나님을 찾았다고 대답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괴뢰군에 억지로 붙들려 나갔다가 석방되어 나온 애국 청년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청년이 괴뢰군과 함께 몰려서 유엔군이 북진하여 올라갈 때, 저 삼각산 어떤 골짜기에 숨었는데 유엔군 비행기들이 대편대를 지어와서 폭격을 하고 기관총 소사를 하였다고 합니다. 그때 보니까 그 저 공산당들과 정치 보위부에 있는 사람들까지 모조리 솔포기 아래 엎드려서 "하나님, 하나님"하고 하나님을 찾는 소리가 크게 들리더랍니다. 사람이 위급할 때는 하나님을 찾습니다. 어떤 인류학자는 "사람은 불치병적으로 종교적이다"라고 지적하였습니다.

여러분, 두 가지를 늘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사람에게는 여러 가지 본능이 있는데, 그 본능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본능을 만족시킬 대상이 있습니다.

가령, 우리 사람에게는 먹는 본능이 있습니다. 그 먹는 본능을 만족시킬 음식물이 있습니다.

우리 사람에게는 사교적 본능이 있습니다. 사교할 수 있는 많은 다른 친구들이 있습니다.

우리 사람에게는 성에 대한 본능이 있습니다. 그런고로 남성과 여성이 있습니다. 본능이 있으면 반드시 거기에 대상이 있습니다. 사실은 그 대상이 있기 때문에 본능이 생겼습니다. 가령 눈을 보면, 눈이 필요하게 쓸만한 빛이 있을 것입니다. 빛이 없다고 하면 눈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귀가 있습니다. 이 귀가 들을 만한 소리가 있습니다.

또, 우리 사람의 육체를 가만히 보면 감각이 있습니다. 가령 감각하는 기관, 눈이든지 코든지 하는 감각이 있으면 반드시 거기에 대상이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코가 있습니다. 세상에는 반드시 냄새가 있습니다. 만일에 세상에 빛이 없다고 한다면, 우리 사람에게 눈이 생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떤 책을 보니까, 깊은 굴 속에 못이 혹 있을 수가 있는데, 그런 못 가운데 사는 고기는 다른 것은 다 있지만 눈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항상 캄캄한 데 사는 고기에게 눈이 무슨 소용이 있어요.

감각기관 있는 것은 벌써 대상이 있는 까닭에 감각기관 생긴 줄 압니다. 빛이 있어서 눈이 생겼고 , 소리가 있어서 귀가 생긴 줄 압니다.

그러면, 우리 사람은 이런 종교적 동물이요, 종교성이 있고 무엇을 숭배하려고 하는 영혼으로써 동경하는 이런 마음, 부인하려고 하여도 부인할 수 없는 종교적 욕망이 있는데, 여기에 대한 대상만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까? 반드시 있습니다.

사실, 이와 같은 인간 속에 종교성이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계신 까닭입니다.

왜 봄에 풀이 위로 자랍니까? 위에 태양이 있는 까닭입니다. 왜 사람의 심령이 높은 것을 앙망하고 동경합니까? 그 위에 하나님께서 계신 까닭입니다.

그래서 플라토(Plato)라고 하는 철학자는 말하기를, "무신론은 한 질병이다"라고 했습니다. 무신론을 주장하는 사람은 말하자면 환자입니다.

우리는 다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병으로 보지 못합니다. 이런 소경은 빛이 없다고 주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 인간의 종교성을 살펴볼 때, 우리는 자연히 하나님께서 계신 것을 깨닫게 됩니다.